
인류는 오랫동안 노화를 늦추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건강한 수명을 늘리는 것은 현대 의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시작된 한 임상시험은 기존의 목표를 한 단계 뛰어넘는다. 노화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이미 늙은 세포를 다시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역노화를 사람에게 처음 적용하는 시험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기업 라이프 바이오사이언스(Life Biosciences)는 미국 식품의약국 FDA의 승인을 받아 역노화 유전자 치료제 'ER-100(Epigenetic Reset-100)'의 임상 1상을 시작했다. 올해 3월 임상이 개시됐으며, 6월 첫 번째 환자에게 치료제가 투여됐다. 연구는 2027년까지 진행되며 이후 최대 5년간 장기 안전성을 추적 관찰할 예정이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신약 개발을 넘어 노화를 바라보는 의학적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바이오 산업과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노화를 늦추는 치료에서 노화를 되돌리는 치료로
지금까지 항노화 연구의 중심은 노화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있었다. 대표적으로 메트포르민이나 라파마이신과 같은 약물을 활용하거나, 기능을 잃은 노화세포인 '좀비세포(Senescent Cell)'를 제거하는 세놀리틱(Senolytic) 치료가 대표적이다.
반면 ER-100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 손상되고 노화된 세포를 제거하는 대신 세포 내부의 후성유전학적 정보를 다시 활성화해 젊은 세포처럼 기능하도록 유도하는 '부분적 세포 재프로그래밍(Partial Cellular Reprogramming)' 기술을 적용했다. 이는 세포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노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기능만 회복시키겠다는 개념이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성공한다면 항노화 산업이 '노화 지연'에서 '노화 역전'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가 제시한 '노화 정보 이론'
이번 기술의 중심에는 하버드 의과대학 유전학 교수인 데이비드 싱클레어(David Sinclair)가 있다. 그는 노화를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세포가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정보가 점차 손실되는 과정으로 설명하는 '노화 정보 이론(Information Theory of Aging)'을 제시해 왔다.
싱클레어 교수는 세포의 DNA 자체보다 DNA를 조절하는 후성유전학적 정보가 흐트러지면서 노화가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정보를 다시 정상 상태로 복원할 수 있다면 노화 역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연구 철학이다.
이번 임상은 이러한 이론이 동물실험을 넘어 사람에게도 적용 가능한지를 검증하는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학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동물실험에서 확인된 시신경 재생 가능성
이번 임상의 기반은 2020년 하버드 의대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다. 당시 연구에서는 시신경이 손상된 생쥐에게 야마나카 인자 가운데 OCT4, SOX2, KLF4 세 가지 유전자를 활성화한 결과 신경세포 재생이 촉진됐으며, 노령 생쥐와 녹내장 모델 생쥐의 시력 기능이 일부 회복되는 결과가 확인됐다.
이후 라이프 바이오사이언스는 설치류뿐 아니라 영장류 모델에서도 연구를 확대하며 안전성과 효능을 지속적으로 검증했고, 마침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했다.
이번 임상의 첫 대상은 녹내장과 비동맥성 전방허혈성 시신경병증(NAION) 환자다. 두 질환 모두 망막신경절세포와 시신경이 손상되면서 시야가 좁아지거나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현재까지 손상된 시신경을 근본적으로 회복시키는 치료법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야마나카 인자를 이용한 부분적 세포 재프로그래밍
ER-100은 일본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발견한 '야마나카 인자' 가운데 OCT4, SOX2, KLF4 세 가지 유전자를 사용한다. 유전자 전달 바이러스를 이용해 해당 유전자를 안구 조직에 전달한 뒤, 환자가 독시사이클린을 복용하는 동안에만 유전자가 활성화되도록 설계했다.
이 같은 조절 시스템은 필요한 기간에만 재프로그래밍을 유도해 과도한 세포 변화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안전장치다. 연구진은 먼저 저용량과 고용량을 단계적으로 투여하며 안전성을 평가한 뒤, 이후 대상 질환을 NAION 환자로 확대할 계획이다.
성공 여부를 결정할 핵심은 안전성
이번 임상 1상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치료 효과보다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세포 재프로그래밍 기술은 잘못 조절될 경우 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잃거나 종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따라서 연구진은 단일 투여 후 약 8주 동안 유전자 발현을 정밀하게 조절하고, 첫 6개월 동안 집중 검사를 실시한다. 이후 최대 5년 동안 장기 추적 관찰을 통해 시력 변화와 이상 반응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될 경우 향후 적용 범위는 녹내장 치료를 넘어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과 심혈관 질환, 근감소증, 조직 재생 치료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다만 이러한 확장 가능성은 후속 임상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어야만 현실화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