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11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양심 냉장고'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 시간이나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안전선 지키기와 주행 속도를 지키는 자들에게 냉장고 한 대를 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당시 필자는 방송 중에 감동이 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새벽 4시 정도에 티코 한 대가 정지신호를 보고 정지선 앞에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제작진들은 달려가 차 주인에게 "왜 신호를 지키셨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지체장애인 운전자는 어눌하지만 천천히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늘… 지켜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양심을 늘 지키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허물을 감추는 자들도 있습니다. 거짓된 행동과 부정적 파장을 일으켰으면서도 책임을 전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위증하고도 용서도 구하지 않은 자, 비리를 저지르고도 당당하다고 소리를 치는 자, 선택적 분노를 즐기는 자도 있습니다. 그런 자들로 인해 공동체 안에 먹구름이 끼는 것입니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것이 인생인데 잠시의 유익을 위해 비열한 방법을 앞세워 살아간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자가 없을 것입니다. 졸작 인생과 걸작 인생의 기준은 '정직'입니다. 정직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겠으나 졸작 인생으로 침몰될 것입니다. 하지만 손해 보는 한이 있어도 정직한 마음을 품는다면 걸작품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졸작 인생을 살고 있는가? 걸작품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정직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생명을 걸고 양심을 지키는 사람도 필요한 시대입니다. 말한 것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그리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내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뒤로 물러설 수 있는 대인(大人)을 보고 싶은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냉장고 선물을 받지는 못해도 진실한 마음을 품는 자를 만나고 싶은 시대입니다.
누구든지 실수할 수 있고 큰 잘못을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잘못을 인정하고 삶을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진심을 담아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입니다."라고 용서를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진정성을 담아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돌을 던지지는 않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나 하나 정직과 양심을 지킨다고 해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들이 모인다면 오염돼 가는 이 땅은 회복될 것입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진리의 깃발을 흔든다 해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진리의 깃발과 정의의 깃발은 계속 흔들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양심을 지키고 진실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모두가 불의를 범해도 나만큼은 신실함을 유지하겠다는 마음가짐도 품어야 합니다. ‘왜 지켜야 하는가’라는 반론을 제시할 때 "내가… 늘… 지켜요"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