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감천/ 이은택 時論
눈의 집에서 들려오는 통증의 노래
내가 통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나에게 의사를 찾아가라 말한다./ 하지만 이 통증은 몸속의 뼈나 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이것은 내 삶의 가장자리,/우리가 함께 숨 쉬는 이 세상의 상처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상처받았을 때/ 내 가슴이 먼저 메어오는 것,/ 누군가 굶주려 울고 있을 때/ 내 목구멍으로 밥알이 넘어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통증이다./ 약을 먹는다고 나을 리 만무하다./ 이 통증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인간의 온기,/ 그리고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해지는 날뿐이다./ 내가 여전히 아프다는 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고,/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네팔의 국민시인 두르가 랄 쉬레스타의 ‘통증 (Pain)’
산스크리트어로 ‘눈(Hima)’과 ‘거처(Alaya)’가 만난 이름, 히말라야. 직역하면 그저 ‘눈의 집’이라는 서정적인 뜻을 지니지만, 그 하얀 고요 뒤에는 늘 거친 삶과 뜨거운 숨결이 숨 쉬고 있다. 억겁의 세월 동안 눈을 품어온 거대한 산맥 아래에서 인간은 자연의 위엄 앞에 납작 엎드리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품어 안으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왔다.
네팔의 국민시인 두르가 랄 쉬레스타는 그의 시 〈통증〉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묻는다. 시인은 몸의 뼈나 살에서 오는 아픔이 아니라, 세상의 상처와 타인의 굶주림을 보며 가슴이 메어오는 것을 진짜 ‘통증’이라 불렀다. 약을 먹어도 나을 수 없는 이 고통은 오직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인간의 온기와 자유, 그리고 평등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고 타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그의 나지막한 울림은, 단순한 문학적 읊조림을 넘어 히말라야 자락을 살아내는 민중의 삶 그 자체를 대변한다.
그리고 지금, ‘눈의 집’ 네팔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뜨거운 통증을 지나고 있다. 히말라야의 빙하가 무너지고 폭우가 쏟아져 대지가 찢겨 나가는 자연재해 속에서, 민중들은 한편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Z세대를 중심으로 한 청년들은 SNS 통제와 불평등에 맞서 거리로 나섰고, 마침내 수십 년 묵은 기성 정치를 몰락시키며 청년 총리를 탄생시키는 대변혁을 이끌어냈다.
거대한 자연의 참사와 오랜 정치적 혼란이라는 이중의 고통 속에서 네팔 국민들이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시인이 노래한 ‘연대의 통증’이었다. 타인의 슬픔에 함께 울고, 무너진 삶의 터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얼어붙은 눈산 아래에서 타오르는 가장 인간적인 온기다.
히말라야는 단순히 눈이 머무는 차가운 거처가 아니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것으로 품어 안는 시인의 마음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거리에 선 청년들의 뜨거운 열망이 만나 비로소 온기를 얻는 삶의 터전이다. 산맥이 거센 바람을 견디며 제 자리를 지키듯, 통증을 느끼며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한 ‘눈의 집’은 결코 차갑게 식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