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감천/ 이은택 時論
지구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 그 품에 안긴 나라 네팔이 찢겨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계절을 잊은 폭우와 빙하호 붕괴, 사상 최악의 산사태가 마을 전체를 덮치고 도로를 삼켰다. 언론은 이를 '기후 재앙'이라 부르지만, 네팔 사람들에게 이 비극은 단순히 자연의 변덕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이 저지른 방화에 갇혀 불타오르는, 지극히 불공정하고 참혹한 '기후 불평등'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네팔이 전 세계에 배출하는 온실가스 비중은 0.02%~0.05% 내외에 불과하다. 지구 전체 탄소 발자국에 비하면 거의 무에 가까운 수치다. 그러나 그 미미한 수치의 대가는 혹독하다. 석탄과 석유를 불태워 이윤을 독식하고 번영을 누린 것은 산업화된 선진 탄소배출국들이지만, 그 공장의 연기가 불러온 지구온난화의 최전선에 서서 목숨을 잃고 터전을 빼앗기는 것은 네팔의 서민들이다.
최근 네팔 정부와 외교 당국이 선진 탄소배출국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구걸하듯 인도주의적 구호물자를 기다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들은 단호하게 '기후 배상'과 '손실과 피해'에 대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촉구한다. "우리가 만들지 않은 비극의 대가를 왜 우리가 목숨으로 치러야 하는가"라는 이 당당한 항변은 국제적 수사(修辭)에 갇혀 있던 선진국들의 양심을 비수로 찌른다.
온실가스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뉴욕과 베이징, 도쿄의 화석연료 연기는 대기 속에 뉘엿뉘엿 쌓여 마침내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녹였다. 선진국들이 당장 행동하지 않는다면, 네팔이 겪는 오늘날의 '히말라야 쓰나미'는 머지않아 시차를 두고 선진국 본토의 재앙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기후 위기 대응의 본질은 기술이나 자본이 아닌 '정의'이다. 선진 탄소배출국들은 시혜적인 지원이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네팔에 대한 손실 보상과 기후 적응 기금 지원은 선진국이 이행해야 할 최소한의 '부채 상환'이다.
히말라야의 얼음이 다 녹아내리기 전에, 세계는 네팔의 정당한 항변에 답해야 한다. 죄 없는 자들의 비명을 외면하는 번영은 사기이자 공범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