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도 응급실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명절 의료 안전망을 다시 생각하다

서울시는 이번 설 연휴 동안 72개 응급의료기관을 24시간 운영하고, 하루 평균 2,656개소의 병의원과 약국을 가동한다고 밝혔다. 숫자로 보면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이 정책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한 ‘운영 개수’ 때문이 아니다. 응급실에 몰리는 수요를 분산시키겠다는 구조적 시도이기 때문이다. 사진=서울시

 

 

설 연휴가 다가오면 도시는 조금 느려진다. 출근길은 한산해지고, 병원도 문을 닫는다. 사람들은 고향으로 향하고, 가족과 식탁을 둘러앉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공간이 있다. 바로 응급실이다.

 

 

명절은 휴식의 시간인 동시에, 의료 체계에 가장 큰 긴장을 주는 시기다. 평소에는 동네 병·의원을 찾았을 경증 환자들이 문 닫힌 진료실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 응급실로 향한다. 응급실은 어느새 “가장 가까운 병원”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응급실은 중증 환자와 경증 환자가 뒤섞인 채 과밀 상태에 놓인다.

 

 

서울시는 이번 설 연휴 동안 72개 응급의료기관을 24시간 운영하고, 하루 평균 2,656개소의 병의원과 약국을 가동한다고 밝혔다. 숫자로 보면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이 정책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한 ‘운영 개수’ 때문이 아니다. 응급실에 몰리는 수요를 분산시키겠다는 구조적 시도이기 때문이다.

 

 

응급실은 왜 명절마다 붐빌까

 

 

응급실 과밀은 시민의 무분별한 이용 때문만은 아니다.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명절에는 병원이 닫혀 있다. 아픈 아이를 안고, 갑작스러운 복통에 시달리며, 고열이 나는 가족을 바라볼 때 “기다려 보자”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가장 확실한 선택지는 응급실이 된다. 응급실은 24시간 열려 있고, 전문 인력이 있다. 불안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곳을 찾는다.

 

 

이번 대책은 이 ‘불안’을 나누려는 시도다. 서울형 긴급치료센터 2곳은 밤 12시까지 외상과 급성 질환을 진료하고, 외과계 전담병원 4곳은 24시간 운영된다. 소아를 위한 ‘우리아이 안심병원’과 ‘달빛어린이병원’도 가동된다.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핫라인까지 준비됐다. 응급실을 비워두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응급실을 응급환자에게 돌려주기 위한 설계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

 

 

이번 설 연휴 동안 하루 평균 병의원 1,220개소, 약국 1,436개소가 문을 연다. 시민은 서울시 누리집, 120 다산콜센터, 119, 모바일 앱을 통해 실시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볼 점이 있다. 의료 접근성은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접근성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문이 열려 있어도 모르면 갈 수 없다. 갈 수 있어도 믿지 못하면 선택하지 않는다. 응급실 과밀은 의료 인프라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정보 신뢰의 문제다. “가까운 병의원을 이용해 달라”는 당부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시민이 그 정보를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명절 의료 대책의 진짜 시험대는 바로 이 지점이다.

 

 

명절 대응은 ‘임시’여야 하는가

 

 

우리는 매 명절마다 비상 의료체계를 가동한다. 그리고 명절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응급실 과밀은 명절에만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다. 평소에도 대형병원 쏠림과 중증·경증 혼재 문제는 반복된다. 명절은 우리 의료체계의 취약한 부분을 확대해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이 대책은 일회성 대응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상시 구조 개편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가. 1차 의료의 야간·휴일 대응을 강화하고, 경증 환자를 분산할 수 있는 체계를 평상시에도 유지해야 한다. 디지털 기반 의료 정보 플랫폼도 명절 한정 서비스가 아니라 상시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응급실은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

 

 

의료 안전망은 결국 ‘신뢰’의 문제다

 

 

서울시는 “명절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그 말은 단순히 병원을 여는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불안을 줄이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의료 안전망은 숫자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민이 느끼는 신뢰의 총합이다. 응급환자의 시간은 명절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중증 외상, 심뇌혈관 질환, 고위험 산모의 상황은 단 몇 분이 생명을 가른다. 그래서 응급실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설 연휴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응급실. 그 불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유지하고자 하는 안전의 상징이다. 명절이 지나고 일상이 돌아온 뒤에도 우리는 질문을 이어가야 한다. 응급실을 진짜 응급환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의료 안전망은 충분히 신뢰받고 있는가.

 

 

이번 설 연휴 대책이 단순한 명절 공지가 아니라, 의료 체계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명절을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의 의료도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작성 2026.02.14 11:18 수정 2026.02.1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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