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오영수의 '은냇골 이야기' 온정을 말하다

민병식

오영수(1909-1979) 소설가는 경남 울주 출생으로 일본 오사카 소재 나니와 중학을 수료했고 일본 국립예술원을 졸업했다. 경남여자고등학교 및 부산중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1950년 ‘서울신문’에 단편 ‘머루’가 입선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단편소설로 1961년 발표되었다. 은냇골이라는 아주 깊은 첩첩산중의 골짜기가 있었다. 예로부터 은냇골은 약초 캐던 곳이었는데 날짐승도 가기를 망설이는 곳이었다. 그곳에 약초 캐는 형제가 어느 날 은냇골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벼랑까지 왔다가 골짜기에 삼밭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몸집이 작은동생이 줄을 타고 벼랑을 내려갔다가 삼을 캐서 올라올 때 바위틈에서 가마솥만 한 거미가 나와 밧줄을 끊어 버려 형제는 안개 속에 묻혀버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고 그래서 이 은냇골에서는 후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생활용품을 장만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약초를 팔러 산을 내려갈 때뿐이었고 산을 내려갈 때도 가족이 아닌 이웃을 선정하여 두 사람 이상이 갔다. 어느 봄에 삼 두 뿌리를 갖고 도망가 버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냇골에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네 조카딸 덕이와 눈이 맞아 덕이가 아이를 배는 바람에 몰래 도해친 김 노인이 들어오고 다음 해 도박으로 집안을 망치고 쫓긴 박 생원이 들어온다. 이미 은냇골에는 양 노인과 양 노인의 아들, 며느리, 손녀가 있었고 또 지가(哥)네 부부와 젊은 문둥이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어느 해 혹독한 흉년이 닥치자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남은 이는 김 노인 부부와 문둥이 부부뿐이다. 양식이 없자 김 노인은 처이모 집에 가서 간신히 양식을 약간 얻어 온다. 그러나 김 노인의 아내 덕이는 굶주림으로 반 미친 사람이 다 되어 갓 낳은 아들을 솥에 넣어 죽게 하고는 김 노인을 보자마자 배고픔을 못 이겨 김 노인을 뜯어먹으려 했다. 김 노인은 갓난아이를 묻어 주고 돌아왔다. 

 

그들은 얼마 안 되는 양식으로 겨울을 지낼 수밖에 없었다. 김 노인의 아내 덕이가 정신을 차린 후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지만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다시 봄이 되자 양 노인네는 며느리가 아이를 낳아서 돌아왔고, 박 생원도 돌아왔다. 그해 초가을에 김 노인의 아내, 덕이가 팔삭둥이를 낳았다. 문둥이 부부의 아내 옥례가 낳은 아이가 훗날 ‘만’이 된다. 세월이 지나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러 찾아오자, 김 노인은 그들의 지난 세월과 잃어버린 생명을 회상하며 허무와 연민에 젖는다.

 

은냇골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끊어진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 인간의 진실한 정이 드러난다. 눈이 내려 서로 오갈 수 없는 겨울이면, 마을 사람들은 꿩 한 마리를 잡아 술을 빚고 이웃을 불러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삶을 살며 은냇골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지탱하는 ‘인간다움’이 있었다. 작품은 생존을 다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남아 있는 인간성의 살아있음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현시대는 어떤가. 살기 좋아진 지금도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한다. 그러나 척박한 은냇골과는 비교도 안 되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으면서 '함께'라는 의식이 있는가. 요즘처럼 경제가 곤두박질친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추운 겨울, 지금이 바로 은냇골의 정과 사랑이 진짜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매서운 한파에 경제까지도 얼어붙은 지금이지만 저마다 아주 조금씩의 온기라도 어려운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온정이 눈처럼 퐁퐁 내렸으면 한다.

 

 

[민병식]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시인

현) 한국시산책문인협회 회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뉴스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2 전국 김삼의당 공모대전 시 부문 장원

2024 제2회 아주경제 보훈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5.12.24 09:53 수정 2025.12.2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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