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대 칼럼] 고구마의 추억

문용대

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한다. 일하다 보면 뜻밖의 따뜻한 마음을 마주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어느 세대에서 갓 삶아낸 고구마를 그릇에 담아 건네주셨다. 노란 속살이 드러나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감사히 받으며 한입 베어 물었다. 단순한 음식인데도, 그 달콤한 맛은 곧바로 내 마음속 깊은 문을 열어젖혔다. 잊고 있던 고향의 풍경, 어린 날의 기억들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졌다.

 

내가 자라난 고향은 산과 들로 둘러싸인 작은 농촌이었다. 살림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고구마만큼은 늘 풍성했다. 봄이면 밭이랑을 정리하고 고구마 줄기를 심었다. 어른들은 늘 말씀하셨다. “고구마는 비를 맞으며 심어야 제대로 자란다.” 허리를 굽혀 흙을 눌러 심는 동안, 어린 나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비를 맞으며 뿌리를 내린 고구마가 강하고 튼튼하듯, 사람도 어려움을 겪어야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되었다. 

 

여름이 되면 줄기는 무성하게 뻗어 밭을 뒤덮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무성한 줄기를 헤치고 김을 매는 일은 고달팠다. 그러나 가을이 지나 서리가 내리면, 그 고생은 잊히고 오직 기쁨만 남았다. 아버지가 소를 몰아 쟁기를 끌고 가시면, 우리는 줄지어 따라가며 고구마를 잽싸게 주웠다. 조금만 늦으면 되돌아오는 쟁기에 묻히기 때문에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잘린 고구마도 귀한 수확이었고, 흙 묻은 고구마를 두 손에 가득 안을 때면 어린 마음에도 뿌듯함이 차올랐다.

 

수확한 고구마는 짚 가마니나 바지개에 담아 날랐다. 먼 밭길을 오가는 짐은 무거웠지만, 방 윗목에 두지를 쌓아 올리고 나면 마음은 한없이 든든했다. 수숫대와 볏짚으로 정성껏 엮어 올린 두지가 방 안을 가득 채우면, 그것만으로도 겨울이 든든했다. 부자란 무엇인가. 그때의 우리는, 고구마 두지 앞에서 세상 누구보다 넉넉한 부자였다.

 

겨울이면 아궁이 위 무쇠 솥에서 고구마를 쪄냈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순간, 우리는 아이처럼 호호 불며 맛을 보았다. 구워 먹거나 삶아 먹고, 겨울밤 이불 속에서 먹던 고구마의 달콤한 맛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시커멓게 탄 군고구마를 나누며 까르르 웃던 기억도 그대로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삶은 고구마는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배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다.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삶 속에서도, 고구마 한 알이 내 마음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부모님의 손길과 어린 날의 웃음을 다시 불러오는 매개체다.

 

고구마는 뿌리만 먹는 것이 아니다. 잎과 줄기는 나물이 되어 식탁에 오르기도 하고, 소에게 주면 겨울 양식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작은 생명 하나가 삶의 여러 층을 이어 주듯, 나의 기억과 오늘도 이어진다.

 

오늘 나는 고구마는 단순한 뿌리작물이 아니라, 나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주는 소박한 매개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삶의 어느 순간에도 이 달콤한 추억을 잊지 않고 품어 두려 한다.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소설문학상 수상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한국예인문학, 지필문학, 대한문학, 문학고을’ 활동

‘대한문학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브레이크뉴스’ 오피니언 필진

‘코스미안뉴스’ 오피니언 필진

수필집 ‘영원을 향한 선택’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이메일 : myd1800@hanmail.net

 

작성 2025.11.27 10:58 수정 2025.11.2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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